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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셰이프 오브 워터: 사랑의 모양’ (소수자 연대, 물의 상징, 스트릭랜드)

by HanCharm 2026. 6. 12.

영화 '셰이프 오브 워터: 사랑의 모양' 2017

 

 

솔직히 저는 이 영화를 보기 전까지 기예르모 델 토로 감독을 '괴물 영화 감독' 정도로만 알고 있었습니다. 어렸을 적 판의 미로를 친구과 함께 보다가 손에 눈이 달린 페일 맨이 나오는 장면에서 기겁해서 중간에 몇 번이고 소름이 돋은 기억이 있거든요. 그 트라우마 때문에 셰이프 오브 워터도 한참 미루다가 결국 보게 됐는데, 전혀 다른 종류의 충격을 받았습니다. 이건 단순한 괴물 영화가 아니었습니다.

소수자 연대가 만들어낸 구조

이 영화의 배경은 1960년대 미국과 소련 간의 냉전(Cold War) 시기입니다. 냉전이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과 소련이 직접적인 군사 충돌 없이 이념과 기술력으로 경쟁하던 대리전 구도를 말합니다. 이 시대를 배경으로 선택한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라고 봅니다. 차별이 제도화되어 있던 시대, 다수가 소수를 구조적으로 억압하던 시절이 이 영화의 무대입니다.

주인공 일라이자는 정부 소속 비밀 연구소에서 일하는 벙어리 청소부입니다. 말을 하지 못하기 때문에 수어(手語, 수화)로만 소통합니다. 수어란 청각 장애인 또는 언어 장애인이 손의 모양과 동작으로 의사를 전달하는 시각적 언어 체계입니다. 그녀의 언어는 직장 동료 대부분에게 투명하게 취급됩니다. 그녀 주변에는 비슷하게 사회 주변부에 놓인 인물들이 모여 있습니다.

  • 젤다: 인종 분리 정책이 채 사라지지 않은 시대를 살아가는 흑인 여성 청소부
  • 자일스: 직업도 잃고 동성애자라는 이유로 사회에서 배제된 중년 화가
  • 드미트리: 연구진 중 유일하게 자산의 지적 가치를 이해했던 소련 측 스파이

일라이자를 포함한 이 네 사람의 공통점은 당시 사회가 정의한 '정상 범주'에서 벗어나 있다는 점입니다. 그리고 바로 그 이방인 경험이 이들을 연결합니다. 제가 영화를 보면서 가장 인상 깊었던 지점이 이 부분이었는데, 자일스가 처음에는 일라이자의 부탁을 거절하면서 자산을 '그것(thing)'이라고 불렀다는 사실입니다. 동성애자로서 스스로 차별의 피해자이면서도, 더 낯선 존재에 대해서는 같은 거리를 두었던 것이죠. 그러다 그는 결국 가장 적극적으로 탈출 작전을 돕게 됩니다. 이 변화가 설득력을 가지는 이유는 그가 '다름을 이해하는 연습'을 이미 자기 삶에서 해왔기 때문입니다.

사회심리학 연구에 따르면 소수 집단 구성원은 집단 간 공감(intergroup empathy) 능력이 상대적으로 높게 나타나는 경향이 있습니다(출처: 미국심리학회 APA). 집단 간 공감이란 자신이 속하지 않은 다른 집단의 감정과 처지를 이해하는 심리적 능력을 의미합니다. 이 영화는 그 이론을 극적으로 구현해 보입니다.

물의 상징

영화 제목이 왜 셰이프 오브 러브(Shape of Love)가 아니라 물(Water)인지, 저도 처음에는 흘려 넘겼습니다. 그런데 일라이자의 하루를 따라가다 보면 물이 단순한 배경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그녀는 욕조에서 하루를 시작하고, 물로 계란을 삶고, 결국 물속에서 사랑을 완성합니다. 물은 담기는 용기(容器)에 따라 형태가 바뀌지만 본질은 변하지 않습니다. 이것이 이 영화가 사랑과 존재를 정의하는 방식이라고 생각하게 됐습니다.

영화에서 물의 역할을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일라이자가 자산과 처음 교감을 나누는 공간도 물이 차 있는 수조 앞이고, 둘이 사랑을 나누는 욕실 전체가 잠기는 장면에서도, 마지막 운하로 뛰어드는 결말에서도 물은 항상 그 자리에 있습니다. 창문에 맺힌 빗방울들이 음악에 맞춰 흐르는 장면은 제가 보면서 소름이 돋을 정도였습니다. 영화적 미장센(mise-en-scène)이라는 개념이 있는데, 미장센이란 화면 안에 배치된 모든 시각적 요소, 즉 조명, 색감, 소품, 공간을 통해 의미를 구성하는 방식을 의미합니다. 이 영화에서 물은 그 미장센의 핵심 언어입니다.

스트릭랜드의 붕괴

반대편에 악역 스트릭랜드가 있습니다. 그는 비밀 연구소의 보안 책임자로, 자산을 '연구 대상'이자 '제거 대상'으로만 인식합니다. 그가 타고 다니는 청록색 캐딜락, 분홍빛으로 가득 찬 가정, 성공을 보장받은 듯한 백인 가장의 이미지. 이 모든 기표(記標)가 그를 '사회 주류'의 상징으로 포장합니다. 기표란 기호학에서 어떤 의미를 전달하는 시각적, 언어적 형태를 가리킵니다. 그런데 이야기가 진행될수록 그 기표들이 하나씩 무너집니다. 자산 탈출 작전 과정에서 캐딜락의 앞 범퍼가 부서지고, 초반에 잘렸다가 접합 수술을 받은 두 손가락은 완전히 썩어들어 결국 스스로 잘라내야 하는 지경에 이릅니다. 신체결손자가 되어가는 스트릭랜드는 아이러니하게도 그가 경멸하던 '이방인들'과 점점 같은 모습이 되어 갑니다.

흥미로운 점은 그가 자신을 성경 속 신(神)에 비유하며 권력을 정당화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결말에서 자산에게 "너는 신이구나"라는 말을 하며 무릎을 꿇는 것은, 그 스스로 만든 논리가 자신을 향해 되돌아오는 장면입니다. 제 해석으로는 그는 변한 것이 아닙니다. 배경이 그를 지탱해 주던 시절에는 숨겨져 있던 내면이, 그 배경이 사라지면서 그대로 드러난 것뿐입니다.

 

영화 비평 분야에서 이 영화는 제75회 베니스 국제영화제에서 황금사자상을 수상했고, 제90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작품상을 포함해 4개 부문을 수상했습니다(출처: 아카데미 시상식 공식 사이트). 수상 실적만 보더라도 이 영화가 단순한 판타지 로맨스로 소비되지 않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결국 셰이프 오브 워터가 묻는 것은 하나입니다. 당신은 지금 누군가를 '그것(thing)'이라고 부르고 있지는 않은가. 이 영화를 보고 나서 저 스스로도 그 질문을 피해 가기 어려웠습니다. 자일스처럼 자신이 차별받는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더 낯선 존재에게 같은 시선을 보낸 적이 없었는지. 영화는 답을 강요하지 않지만, 물처럼 그 질문이 어느 틈엔가 스며들어 있습니다. 한 번쯤 그 질문을 안고 이 영화를 다시 보실 것을 권합니다.


참고: https://www.youtube.com/watch?v=5ANZp46Rrm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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